통도사에 주석하면서『불교대전』편찬 과정과 새롭게 발굴된 자료
1912년 12월 만해 한용운은 통도사 안양암(安養庵)에 머물면서 해장보각(海藏寶閣)에 봉안된 대장경을 보며 『불교대전』을 채록하였다.
그가 보았던 대장경은 1899년(고종35년)에 해인사에서 찍어낸(印出) 것으로, 모두 4질을 찍어 삼보사찰인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에 각 1질을 봉안하고, 나머지 1질은 전국 13도의 각 사찰에 분산 봉안하였다.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대장경판은 1962년에 국보 제32호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2015년에 실시한 '해인사 사간판 내 대장경판 중복 여부 조사용역'을 통해 중복경판 211판(원판 93판, 후대 보각경판 118판)으로 총 수량은 81,325판으로 정리하였다.
이후 2019년에 수행된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및 고려목판 중복판 보존처리 사업'을 통해 조사된 중복판 인경본을 중심으로 인경 당시의 중복판 사용과 제작시기에 대해 분석한 논문[박광현, "해인사 대장경 중복판의 인경본 조사와 시기분석," 『미술사연구』 38호, 2020. 6, pp. 33-67.]을 통하여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통도사 소장 대장경 가운데 오세암 묵인(默印)이 찍힌 경전 15책이었다. 이는 한용운이 통도사에 오기 전부터 『불교대전』초록의 저본으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오세암의 대장경은 1865년(고종 2년)에 남호영기(南湖永奇; 1820~1872) 스님이 해인사 대장경 2질을 찍어 설악산 오세암과 오대산 적멸보궁에 봉안하였던 것 가운데 하나이다.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2층으로 된 대장전을 건립하였다. 1923년 6월에 금강산을 여행한 성공회 신부 Charles Hunt는 오세암 방문 기록과 사진[Charles Hunt,"Diary of a Trip to Sul-Ak San...(Via the Diamond Mountain) 1923.," Transactions of the Korea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Vo. XXIV, 1935, pp. 1-14.]을 남겼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발생한 화재로 오세암 대장전(현재 천진관음보전 자리)이 불타 소실되었다.
바로 통도사에 있던 그 오세암 대장경의 표지는 묵서로 표제를 적고 오른쪽 아래에 "통도사유상(通度寺留上)"이라는 기록과 함께 묵인(默印)으로 '인제오세암(인(개사슴록 견+도깨비불 인)蹄五歲庵)'과 '오세암(五歲庵)'이라 날인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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