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댓글 내용을 남겨주세요. 최대 글자수를 초과하였습니다. 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권한이 없습니다.

통도사에 주석하면서『불교대전』편찬 과정과 새롭게 발굴된 자료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6.08.24

1912년 12월 만해 한용운은 통도사 안양암(安養庵)에 머물면서 해장보각(海藏寶閣)에 봉안된 대장경을 보며 『불교대전』을 채록하였다.

그가 보았던 대장경은 1899년(고종35년)에 해인사에서 찍어낸(印出) 것으로, 모두 4질을 찍어 삼보사찰인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에 각 1질을 봉안하고, 나머지 1질은 전국 13도의 각 사찰에 분산 봉안하였다.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대장경판은 1962년에 국보 제32호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2015년에 실시한 '해인사 사간판 내 대장경판 중복 여부 조사용역'을 통해 중복경판 211판(원판 93판, 후대 보각경판 118판)으로 총 수량은 81,325판으로 정리하였다.

이후 2019년에 수행된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및 고려목판 중복판 보존처리 사업'을 통해 조사된 중복판 인경본을 중심으로 인경 당시의 중복판 사용과 제작시기에 대해 분석한 논문[박광현, "해인사 대장경 중복판의 인경본 조사와 시기분석," 미술사연구 38호, 2020. 6, pp. 33-67.]을 통하여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통도사 소장 대장경 가운데 오세암 묵인(默印)이 찍힌 경전 15책이었다. 이는 한용운이 통도사에 오기 전부터 『불교대전』초록의 저본으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오세암의 대장경은 1865년(고종 2년)에 남호영기(南湖永奇; 1820~1872) 스님이 해인사 대장경 2질을 찍어 설악산 오세암과 오대산 적멸보궁에 봉안하였던 것 가운데 하나이다.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2층으로 된 대장전을 건립하였다. 1923년 6월에 금강산을 여행한 성공회 신부 Charles Hunt는 오세암 방문 기록과 사진[Charles Hunt,"Diary of a Trip to Sul-Ak San...(Via the Diamond Mountain) 1923.," Transactions of the Korea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Vo. XXIV, 1935,  pp. 1-14.]을 남겼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발생한 화재로 오세암  대장전(현재 천진관음보전 자리)이 불타 소실되었다.

바로 통도사에 있던 그 오세암 대장경의  표지는 묵서로 표제를 적고 오른쪽 아래에 "통도사유상(通度寺留上)"이라는 기록과 함께 묵인(默印)으로 '인제오세암(인(개사슴록 견+도깨비불 인)蹄五歲庵)'과 '오세암(五歲庵)'이라 날인되어 있다. 

  





이전글
다음글 한글 경판(經板)의 발견과 인출(印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