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그때 전주(지금은 완주군) 안심사에 한글 경판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바로 기차를 타고 내려가다가 깜빡 대전역을 지나쳤다. 다음 역인 추풍령역에 내려, 다음날 다시 대전역으로 와서 호남선으로 갈아타서 연산역에 내리는 과정에서 괴로운 경험이 절절하다. 대전역에서 자동차를 타고 안심사에 도착하였다. 한글 경판을 보았을 때의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여러 전문가를 대동하고 다시 내려와 한글 경판을 수습하여 서울로 갔다. 이를 보완하고 경비를 마련하여 한글 경판을 인출(印出, 또는 印經)하여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더욱이 이 한글 경판은 인출 후에 다시 안심사의 대웅전에 갖다 놓았으나 6?25 때 대웅전을 포함한 모든 요사채까지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다. 그의 이러한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그러한 한글 경전을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 한용운, 「국보적 한글 經板의 發見經路」, 『불교』 87호, 1931. 9, pp. 41-44.
- 한용운, 「한글經 印出을 마치고」, 『불교』 103호, 1933. 1, pp. 6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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